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바다에서 선박과 범고래의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범고래 무리가 요트나 범선을 향해 접근해 방향타를 건드리거나 파손시키는 일이 잇따르면서 일부 선박은 운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몇몇 특이한 사건으로 여겨졌던 현상은 이제 수년째 이어지며 유럽 해양 당국과 생물학자들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됐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과 이베리아반도 서쪽 해안이 주목받고 있다. 이 지역에서 관찰되는 범고래들은 다른 지역의 개체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들을 흔히 ‘이베리아 범고래’라고 부르며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범고래들은 왜 갑자기 배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일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점은 ‘공격’이라는 표현 자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범고래가 인간을 먹이로 생각해 선박을 공격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특정 개체들이 선박의 방향타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를 밀거나 따라다니는 행동이 반복되고 있으며, 다른 범고래들이 이를 모방하면서 하나의 행동이 집단 내에서 퍼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범고래는 높은 지능과 사회성을 가진 동물이다. 무리 안에서 사냥 기술과 행동을 학습하고, 어린 개체가 성체의 행동을 관찰하며 새로운 행동을 익히기도 한다. 따라서 한두 마리의 특이한 행동이 다른 개체들에게 전달될 경우 예상보다 빠르게 집단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베리아 범고래와 선박의 상호작용이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일부 범고래가 선박의 방향타 주변을 반복적으로 맴돌거나 이를 밀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보였고, 이후 다른 개체들도 비슷한 행동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선박의 방향타가 손상되거나 운항을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하지만 범고래의 행동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한 가지 가설은 놀이 행동이다. 어린 범고래들이 새로운 물체에 관심을 보이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건드리는 과정에서 선박의 방향타를 하나의 놀이 대상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과거 선박과의 부정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행동일 가능성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특정 개체가 선박과의 충돌이나 불편한 경험을 겪은 뒤 방향타에 관심을 갖게 됐을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인간 활동의 증가다. 지브롤터 해협은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해상 교통로다. 매일 수많은 상선과 어선, 여객선, 레저용 선박이 이곳을 통과한다. 즉 범고래의 서식 공간과 인간의 해상 교통로가 겹치는 것이다.
이베리아 범고래에게 특히 중요한 먹이는 참다랑어로 알려져 있다. 지브롤터 해협은 참다랑어가 이동하는 중요한 경로이기도 하다. 범고래가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선박이 많은 해역을 지나게 되면서 인간과 범고래가 마주칠 기회도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기후변화 역시 장기적으로 이러한 상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바다의 온도가 변하고 해양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물고기의 이동 경로와 분포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이의 위치가 바뀌면 이를 따라 움직이는 포식자의 이동 경로도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 이베리아 범고래의 선박 상호작용이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확립된 것은 아니다.
범고래와 선박의 충돌은 선박 운항에도 실제 피해를 주고 있다. 방향타가 손상되면 배가 제대로 방향을 잡기 어려워지고, 경우에 따라 항구로 돌아가 수리를 받아야 한다. 특히 작은 범선이나 요트는 대형 선박보다 피해에 취약하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당국은 특정 해역에서 선박의 운항 경로를 조정하거나 속도를 제한하는 등의 예방 조치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범고래를 어떻게 보호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안전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범고래는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해양 포유류이며, 이베리아 범고래 개체군은 특히 보전 가치가 높은 집단으로 평가된다. 개체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의 불편을 이유로 범고래를 쫓아내거나 제거하는 방식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선박 운항을 모두 중단할 수도 없다. 지브롤터 해협은 국제 해상교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선박이 이곳을 이용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범고래의 행동을 이해하면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충돌하는 상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범고래의 이동 경로와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어떤 개체가 선박과 상호작용하는지, 특정 계절에 행동이 증가하는지, 선박의 종류나 속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지 등을 분석하면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동물의 이상 행동’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바다를 오랫동안 교통과 산업의 공간으로 이용해 왔지만, 바다에는 이미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었다. 선박이 증가하고 해안 개발이 확대되면서 인간이 사용하는 공간과 야생동물의 서식 공간이 점점 겹치고 있는 것이다.
육지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도시와 산림의 경계가 가까워지면서 멧돼지와 곰이 주거지역으로 내려오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곰이 도시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범고래 역시 마찬가지다. 바다를 인간의 영역과 야생동물의 영역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충돌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범고래가 왜 배를 공격하는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가 범고래의 바다에 너무 가까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아직 범고래가 선박의 방향타를 건드리는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브롤터 해협에서 벌어지는 범고래와 선박의 만남은 단순한 해양 미스터리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