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이고 지역사회에서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책임제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는 9월 1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달장애인 돌봄·자립 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돌봄, 일상 속 자립과 사회참여 확대, 지역사회 중심의 지원체계 구축을 중심으로 3대 전략, 11대 추진과제, 50개 세부과제를 담았다.
눈에 띄는 변화는 돌봄 ‘시간’의 확대다. 하지만 이번 정책을 단순히 돌봄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하는 정책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핵심은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학교에 가고, 일을 하고, 문화시설을 이용하고, 주말을 보내는 ‘보통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도록 국가가 필요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연 1,200시간에서 1,320시간으로…돌봄 시간이 일상을 바꾼다
장애아 가족의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한 장애아 가족 양육지원 이용시간은 2026년 연 1,200시간에서 2027년 연 1,320시간으로 확대된다.
120시간의 증가는 숫자만 보면 단순한 서비스 확대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족에게 돌봄 시간이 추가로 확보된다는 것은 부모가 잠시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방과후나 방학 동안 필요한 돌봄과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또래와 어울리고, 가족의 보호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간활동서비스도 확대된다. 이용 대상자는 2026년 1만5천 명에서 2027년 2만 명, 2030년 3만 명까지 단계적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용자 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다.
주간활동서비스가 실제 자립과 사회참여로 이어지려면 지역사회 안에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카페와 도서관, 작업장, 체육시설, 문화공간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발달장애인이 다른 시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돌봄의 시간은 공간을 만날 때 비로소 ‘일상’이 된다.
주말에도 1:1 돌봄…“보호자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이번 대책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지원 확대다.
정부는 현재 평일 중심으로 제공되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1:1 지원을 주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긴급한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돌봄 제공기관도 2026년 2개소에서 2027년 5개소로 확대한다.
이번 정책에는 부모 사후 돌봄에 대한 오랜 사회적 고민도 담겼다.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 제목으로 내세운 ‘피터팬 아빠’가 남긴 숙제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을 상징한다.
“내가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고(故) 전경철 작가의 사연처럼 부모가 자신의 사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개인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다.
이번 정책은 그 질문에 대해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자립은 서비스 시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부는 「장애인지역사회자립법」 시행에 맞춰 지역사회 자립지원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지역사회 자립지원은 2027년 3월 본사업으로 전환하고, 2027년에는 모든 광역자치단체로, 2030년에는 모든 기초자치단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주거와 일자리, 활동지원 등을 연계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자립을 위해서는 서비스 시간만큼이나 사람과 공간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가 있어도 실제 서비스를 제공할 사람이 부족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도 국가책임의 범위를 돌봄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과 고용, 주거, 이동, 문화 등 발달장애인의 삶과 연결된 여러 영역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이 복지 분야 하나의 사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서비스가 확대되면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진다.
정부는 2027년부터 장애 영유아 돌봄인력에게 영아 2,000원, 유아 1,000원의 가산수당을 신설하고,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 인력에 대한 전문수당 인상도 지속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그러나 서비스가 늘어나는 만큼 인력 부족과 종사자의 업무 부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좋은 돌봄은 제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인력이 있고, 그 인력이 안정적으로 일하며, 전문성을 쌓을 수 있을 때 지속 가능한 돌봄이 가능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국가책임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원하는가’뿐 아니라 ‘누가, 어디에서, 어떤 환경에서 지원하는가’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착한신문의 제언…‘돌봄의 시간’에서 ‘일상의 조건’으로
이번 정책이 실제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첫째는 공간이다.
방과후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일할 수 있는 공간, 문화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지역사회 곳곳에 마련돼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지역사회 공간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는 인력이다.
돌봄 종사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적절한 처우, 전문성 향상과 소진 방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현장의 사람을 함께 늘리고 지키는 정책이 따라가야 한다.
셋째는 연계다.
발달장애인의 삶은 복지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교육이 필요하고, 성인이 되면 일자리가 필요하며, 살아갈 집과 이동수단, 건강관리와 문화생활도 필요하다.
교육·고용·주거·보건·문화 등 여러 영역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이 가능해진다.
돌봄은 시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여는 일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의 의미는 단순히 국가가 가족의 돌봄 부담을 일부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발달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가”다.
돌봄 시간이 늘어나고, 활동할 공간이 열리고, 충분한 인력이 확보되고, 교육과 고용·주거·문화가 연결될 때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부모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아이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고, 성인이 된 뒤에도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
그것이 국가가 보장해야 할 돌봄의 궁극적인 모습일 것이다.
돌봄은 시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일상을 여는 일이다.
이번 정책이 숫자의 확대를 넘어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보통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