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장애인 가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간병비 지원 등 검토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와 만성질환 증가에는 예방·돌봄까지 아우르는 대응 필요
생계가 어려운 국민이 의료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의료급여 제도가 ‘지출관리 중심’에서 ‘건강보장 중심’으로 전환을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8일 2026년 제3차 중앙의료급여심의위원회를 열고 2027년부터 2029년까지 적용될 제4차 의료급여 기본계획에 포함할 주요 제도개선 과제를 검토했다. 이번 논의에서는 중증장애인 가구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간병비 지원 등이 주요 과제로 다뤄졌다.
의료급여, 예방·치료·돌봄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제4차 의료급여 기본계획은 아직 최종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를 단순한 의료비 지원을 넘어 질병의 예방과 관리, 치료, 회복, 지역사회 복귀까지 아우르는 전주기 건강보장 체계로 전환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의료급여 수급자의 건강 취약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급여 수급자 가운데 만성질환자 비중은 2014년 63.1%에서 2024년 84.4%로 증가했다. 정신질환자 비중 역시 같은 기간 22.3%에서 35.2%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질병이 중증으로 악화된 이후 치료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과 건강관리 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늘어나는 의료급여 수요…2026년 추경 2,828억 원 편성
의료급여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2026년 의료급여 본예산은 국비 기준 약 9조8,400억 원으로 편성됐다. 그러나 2026년 2월 의료급여 수급자는 163.9만 명으로, 당초 예산 편성 기준인 160.7만 명보다 3.2만 명 많았다.
정부는 수급자 증가에 따른 진료비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1차 추가경정예산에서 의료급여 진료비 지원 예산을 2,828억 원 추가 편성했다. 이에 따라 2026년 의료급여 예산은 총 10조2,112억 원 규모로 확대됐다.
이는 의료급여가 단순한 복지제도를 넘어 경기 상황과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등에 따라 국민의 건강과 생활을 지탱하는 중요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의료 접근성
의료급여 제도 개선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역 간 의료격차다.
참여연대 월간복지동향에 게재된 지역 의료격차 분석에 따르면 시군구 간 기대수명 차이는 최대 6.56년에 달한다. 소득 수준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욱 커져 강원 철원군의 경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 사이의 기대수명 차이가 12.52년으로 제시됐다.
치료가능사망률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202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치료가능사망자 수는 서울 39.55명, 충북 49.94명으로 분석됐다.
의료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도 적지 않다. 해당 분석에서는 2021년 기준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90분 이내 접근하기 어려운 인구 비율이 강원도에서 25.1%, 응급실까지 30분 이내 접근하기 어려운 인구 비율이 전남에서 35.9%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전국 98개 시군구가 응급의료취약지로 지정돼 있다.
의료 인력의 지역 편중도 문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인용한 분석에서는 인구 1,000명당 필수의료 전문의 수가 수도권 평균 1.86명, 비수도권 0.46명으로 약 4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제시됐다.
지역 의료격차, ‘큰 병원 하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지역 의료격차의 원인으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의료 인력 부족, 의료기관의 수익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지적된다.
특히 환자 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서는 의료기관의 운영 여건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 있고, 의료 인력이 부족하면 주민들이 더 먼 지역의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 가까이에서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건강을 예방하는 일차의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참여연대에 게재된 평창군 보건의료원 사례에서는 노쇠 단계에 대한 예방적 개입과 지역 내 의료·돌봄 자원의 연계를 통해 건강 악화를 예방하는 지역 중심 의료모델이 소개됐다. 이는 지역 의료정책이 대형병원 확충만이 아니라 예방과 지속적인 건강관리, 지역사회 돌봄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재가의료와 통합돌봄 연계도 강화
정부 역시 병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재가의료급여와 통합돌봄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 시범사업을 추진해 온 13개 시군구를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연계 모델을 마련해 전국 확산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장기 입원 후 퇴원한 의료급여 수급자가 지역사회에서 의료뿐 아니라 돌봄과 생활 지원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의료급여의 다음 과제는 ‘아프기 전에 돕는 것’
의료급여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료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질병이 악화된 뒤 치료하는 것과 함께 만성질환을 조기에 관리하고, 퇴원 이후에도 지역사회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의료·돌봄·복지서비스를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지역에 따라 의료서비스 이용 기회가 크게 달라지지 않도록 지역 의료 인력과 일차의료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4차 의료급여 기본계획은 이러한 방향으로 제도를 전환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다만 현재 논의 중인 과제 가운데 일부는 향후 예산과 사회적 논의, 제도 마련 과정을 거쳐 구체화될 예정인 만큼 실제 시행 과정도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의료급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의료비를 지원하는 데 있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거주 지역 때문에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아픈 뒤에도 다시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건강까지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의료급여의 변화가 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